간병용
경북대학교 중문학과 졸업(1988)현대자동차 판매영업부 근무 (10년)
재중국 한국인회(북경) 사무국장 역임
중국 중앙재경대학 금융학과 석사
現북경 건홍투자자문 이사 (kanhmc@hanmail.net)
요즘 중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두 인물이 있다.
한 사람은 신화도(新华都)그룹의 회장이자 복건성 최고부자인 천파슈(陈发树)이고, 또 한 사람은 전문 경영인으로써 샐러리맨 신화를 창조한 탕쥔(唐骏 )이다.
이들 두 사람은 현재 신화도 그룹에 같은 둥지를 틀고 있는데 천파슈는 회사의오너로서 탕쥔은 전문경영인으로서 서로 호흡을 맞추며 탄탄대로를 가던 중 예기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천파슈(陈发树)와 탕쥔(唐骏)
이유인즉 천(陈) 회장의 경우 83억 위안이라는 거액을 들여 설립한 ‘신화도자선기금(新华都慈善基金)’에 출연하기로 금액을 지금까지도 제대로 납부하지 않아(현재 통장잔금 1억 6000만 위안) 그의 행동이 ‘거짓 자선쇼’(空口慈善秀)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그의 파트너인 탕쥔은 자신이 자서전“(나의 성공은 다시 복제될 수 있다(我的成功可以复制)”에 기록했던 박사학위가 사실이 아님이 밝혀져 승승장구하던 그의 앞길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또한 설상가상으로 천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자금광업(紫金矿业,601899)이 금년 7월에 오수침수 방류사건을 일으켜 7억 위안 이상의 손해배상과 벌금을 물게 될 예정이며 탕쥔은 신화도( 新华都,002264) 그룹의 불법대출을 알선한 혐의도 받고 있다.
천 회장이 탕쥔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은 청따그룹(盛大集团)에 있던 그를 자금광업 주식 100만주를 이적료로 제공하고 신화도( 新华都 )로 스카웃하여 경영의 전권을 맡기면서부터이다. 자금광업 주식 100만 주는 당시 시가로 10억 위안에 해당하는 상당히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20여 년의 피땀의 결실인 회사의 경영권을 그에게 맡긴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파격이었다.
천 회장이 사재를 털어 2009년 중국 최대의 개인자선재단을 설립한 것도 탕쥔이 신화도에 와서 만든 작품이다. 천 회장은 83억 위안에 상당하는 자신의 주식을 기금으로 출연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당시 자기 재산의 45%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파격적인 발표와는 달리 현재 통장잔액은 사업을 진행하기에 턱없이 모자르며 부족한 금액에 대한 여론의 주목에 이렇다 할 설명이 아직 없다. 천 회장의 발표가 공수표 남발이 될지 추가 출연을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천 회장은 복건성(福建省) 안계현(安溪县) 사람으로 가난한 농촌의 9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 소학교를 다 마치지를 못하고 일찍부터 목재를 파는 장사를 천주(泉州)에서 시작하였으며 여기에서 돈을 벌어 1987년 동생들과 샤먼(厦门)에 일용잡화 소매점을 열었다. 1995년에는 드디어 복주(福州)에 “신화도백화(新华都百货)”라는 대형 마트를 열어 본격적인 사업을 전개하게 되는데 이후 그는 경영수완을 발휘하여 복건성에만 신화도라는 이름 아래 87개의 소매체인점을 확장시킨다.또한 2000년 9월 모든 사람들이 금광산업에 흥미를 갖지 않을 때, 그는 4800만 위안을 가지고 자금광업(紫金矿业)에 출자하여 지분 20%를 확보하고 2대 주주가 되는데 이것이 노다지가 되어 그가 승승장구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2003년 자금광업이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을 하면서 그의 4800만 위안 투자금은 10억$(홍콩달러)로 불어났고 이어 2007년 선전 거래소 A증시에 자금광업이 다시 상장되면서 그의 투자자금은 100억 위안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7년 투자기간동안에 투자금의 200배가 넘는 수익율을 올린 것이다. 또한 2008년 7월에는 자신이 창업한 신화도실업그룹( 新华都实业集团)이 선전거래소에 상장되었고 2009년의 운남백약(云南白药,000538) 매입으로 2대 주주 등극, 청도맥주(青岛啤酒,600600) 주식 7% 매입 등으로 그는 부를 계속 축적 행진을 지속하였다.2009년 드디어 천 회장은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부자 중 11위에 올랐고 복건성 최고부자가 되어 만천하에 그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 시골출신 무지랭이가 고향을 떠난 지 23년 만에 이룬 쾌거이다.
천 회장이 탕쥔을 영입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미래 신화도 그룹의 전자,정보통신 (IT)방면의 사업 다각화와 그룹의 글로벌화이다.천 회장은 그룹이 커지면서 자신의 경영한계를 알았고 그룹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탕쥔과 같은 IT방면의 글로벌화된 시각을 가진 전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이 점에서 탕쥔의 화려한 경력은 천 회장을 사로잡았다.탕쥔은 1994년 중국 MS에 입사하여 탁월한 관리능력,영업력을 인정받고 2002년 중국 총괄 법인장,그리고 종신 명예총재가 되었으며 , 2004년에는 게임업체 청따그룹(盛大集团)으로부터 260만 주 스톡옵션 제의를 받고 총재로 발탁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3가지 큰 일을 하였는데 청따를 중국 게임업계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을 시킨 일, 인터넷 업체 신랑(新浪) 인수, 청따게임을 무료화하여 청따를 도약시킨 일이다. 한국의 게임업체 액토즈소프트(ActozSoft, 코스닥: 052790)를 인수한 것도 그가 있을 때(2004년) 이루어진 일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다. 좋은 일이 많다 보면 그에 따라 안 좋은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번 사건에서 천 회장은 탕쥔의 발탁으로 그룹의 비상()을 꿈꾸었지만 예상이외의 복병이 발생하여 그 계획이 실현될 지 의문이다.그리고 어찌보면 사실 그 자신도 이번 일의 간접적 피해자이다. 하지만 더욱 분명한 피해자는 이 두 사람과 연관된 기업의 신용과 이미지 실추로 인한 주가하락을 떠안게 될 투자자들일 것이다.